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문단 편집) == 특징 == * [[캐나다]]의 도너번 베일리는 100m 남자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 미국의 [[마이클 존슨]]이 특유의 황금색 스파이크와 독특한 주법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200m와 400m를 동시 석권했고 본래 100m 우승자가 항상 누려오던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라는 영예를 독차지 해 버렸다. 당시 존슨이 세운 19초 32는 그야말로 불세출의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 받았으며[* 역대 최고의 몬스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우사인 볼트]]도 이 기록만은 깨기 어렵다는 평이 일반적이었을 정도였다. 물론 최소한 30년은 걸릴거라던 존슨의 200m 기록을 결국 12년만에 볼트가 경신해 버리긴 했지만...], 미국 언론에서도 공개적으로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는 존슨'이라는 타이틀을 내보내곤 했었다. 대회 종료 후 존슨 측과 베일리 측 모두 여러차례 설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상대적으로 100m 신기록을 세운 우승자임에도 대중들의 관심권에서 크게 멀어진 베일리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그러한 불만을 제기했고, 존슨이 고향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사는 곳' 이라는 대형 간판을 내걸면서 기름에 불을 붙였다.[* 경기 기록을 단순히 달린 거리로 나누면, 베일리보다 존슨의 기록이 당연히 압도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데, m/s가 200m가 더 빠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언론과 존슨의 측근들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자는 존슨이라는 주장을 당당히 내세우는 근거로 써먹었다.] 뉴스를 본 베일리의 부친이 크게 발끈해서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100m 우승자 베일리가 사는 곳' 이라는 광고판을 내거는 등, 다소 유치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이러한 신경전을 이벤트로 살려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200m 대결을 주장하는 존슨과 100m대결을 주장하는 베일리 사이에서 합의를 본 결과가 150m 레이스 승부. 대결 전까지 마치 복싱 경기처럼 서로간의 신경전을 극대화하면서 투어를 벌이기도 했고, 존슨은 특유의 캐릭터와 황금 스파이크를 한층 더 강조하며 관심을 불러모으는데 힘을 보탰다. 다만 결과는 절반가량 지난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근육 경련을 일으킨 존슨이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베일리의 싱거운 승리. 기세 등등한 모습과 특유의 캐릭터 덕분에 많은 전문가와 시청자들은 존슨의 우세를 점쳤으나, (혹은 우세를 바랐으나) 시청자들은 허탈하게 바라보았고 행복한 사람은 소수의 열광하는 캐나다 팬과 베일리 본인 뿐... * [[소프트볼]], [[비치발리볼]], 산악 자전거가 이 대회에 처음 실시되었다. * [[사이클]] 프로 선수가 이 대회부터 출전이 허용되었다. 이전의 팀 타임트라이얼을 대신하여 처음 개최된 개인 타임트라이얼에서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5회 우승자인 스페인의 미겔 인두라인이 우승하였다. 그리고 MTB 크로스컨트리 남녀 경기가 이 대회부터 정식 종목에 추가되었다. * 여자 [[축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 레슬링 자유형 100kg 금메달리스트 [[커트 앵글]]은 올림픽 금메달 이후 [[ECW]]를 거쳐 [[WWE]], [[TNA]]에서 활동하는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 칼 루이스가 35세의 나이로 올림픽 멀리뛰기 4연패를 달성한다. * 여자 [[양궁]]에서 한국의 [[김경욱(양궁)|김경욱]] 선수가 과녁 한가운데에 있는 카메라 렌즈를 2번이나 맞추며(그 유명한 퍼펙트 골드이다.) 2관왕 차지. * [[에르난 크레스포]]와 그의 친구들로 구성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자 축구 종목에서 은메달을 차지했고 크레스포 본인은 득점왕이 되었다. [[카를로스 테베스]]처럼 아예 혼자 다 쓸어먹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때보다는 포스가 덜했지만 나름 강팀이었다. 그 아르헨티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팀은 [[조 본프레레]] 감독의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카테리나 세레브리안스카]]가 금메달을 따면서 리듬체조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가 되었다 * [[통가]]의 패아 울프그램이 복싱 슈퍼헤비급에서 [[우크라이나]]의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 호주와 뉴질랜드를 제외한 오세아니아 국가 중 처음으로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 반면 올림픽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던 영국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올림픽이었는데, 조정에서 나온 금메달 1개가 이 대회에서 영국이 따낸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결국 금메달 1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 종합 36위라는 치욕적인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 일본 역시 굉장히 부진한 성적을 거둔 올림픽이었는데, 유도에서만 3개의 금메달을 땄을 뿐 다른 종목에서는 금메달을 전혀 수확하지 못하며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로 종합 23위를 기록하며 일본의 올림픽 출전 역사에 손꼽히는 부진한 성적을 냈다. 성화를 최종 점화한 사람은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였다. 그가 파킨슨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성화를 점화한 모습은 이 대회에서 몇 안 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자신들에게 그렇게나 철천지 원수의 나라라는 [[미국]] 본토에서 열린 올림픽에 처음으로 [[인공기]]를 휘날리며 참가한 대회이기도 하다.[* 1984년에 같은 국가에서 열렸던 [[로스엔젤레스]] 하계올림픽 때는 불참했다. 이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도 불참했다.] 만약 북한이 이 대회를 보이콧했다면 '''북한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계순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 [[아프리카]] 섬나라인 [[코모로]]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참가했다. 또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이 [[영국]]령으로 참가하게 된 마지막 올림픽이기도 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는 [[중국]] 특별행정구 자격으로 참가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영국령 홍콩]]으로 참가한 마지막 대회에서 홍콩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고(여자요트), 그 결과 올림픽 시상대 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령 홍콩기 계양과 홍콩의 [[영국의 국가|God Save the Queen]]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https://youtu.be/gPk-aYL_9JE|시상식 영상]] 올림픽 주 경기장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바로 개조해서 터너 필드로 20년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 구장으로 쓰이다가 야구단이 [[선 트러스트 파크]]로 옮기며 현재는 [[조지아 스테이트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으로 조지아주립대학교 미식축구장으로 쓰고 있다.[* 조지아 스테이트 팬서스의 홈구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